달력

07

« 2010/07 »

  •  
  •  
  •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2010/01/21 10:00

[번역] 男前 - 사나이 堂本剛/ぼくの靴音2010/01/21 10:00




사나이(pp.159~161, 2002)


  인간은 이제 “끝”인걸까. 가끔씩 그런 식으로 생각 해버릴 때가 있다. 나는 어떤 이유로 살고 있는 걸까. 무엇을 위해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이런 것들을 생각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목표나 꿈도 없이 죽을 용기도 없이 그저 호흡하고 있을 뿐. 식욕·수면욕·성욕 이라는 그저 이 세 가지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매일 매일을 반복한다. 이래서는 인생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세상에 태어난 것만으로도 대단한 기적이고 멋진 일이다. 하지만 모처럼 얻은 생이라면 좀 더 있는 힘껏 대지에 발을 딛고 싶다. 사는 이유와 의미를 가지고 제대로 서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적어도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며 생을 불태우고 싶다.
  나는 그런 사람들과 친구가 된다. 일을 함께 하게 될 사람이라면, 그럼 사람들이 좋다. 연인도 그런 사람이 아니면 싫다. 물론 내 자신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자기 자신이 무언가를 이루려는 필사적인 자세야 말로 중요한 것이다. 절대로 간단한 일은 아니다. 될 것 같으면서도 좀처럼 잘 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꿈이나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리는 모습은 아름다워. 근사하기도 하다. 누군가의 이런 모습을 보았을 때 나는 그 사람이 좋아진다. 그 사람이 여자라면 사랑을 하기도 한다.

  얼마나 자신과 가까운 존재라고 해도 사람은 각자 나름의 사는 이유와 의미를 갖고 있지 않은가. 그런 것들을 존중해 주는 사이라면 친구는 물론 연인사이에도 서로 자극을 주고 서로를 존경할 수 있는 관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여자 친구라고 해도 사는 의미와 이유를 “나”이기만 한 것은 원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기쁜 면이 있긴 하지만 분명 다른 의미나 이유로 그녀가 빛나는 순간도 있을 텐데. 그런 순간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다면 나는 정말 기쁠 것 같다고 생각하니까.

  지금까지의 삶을 되돌아보면,
  그 풍경 속에 “내 자신이 만든 나”는 있는 것일까. “솔직한 나”가 제대로 서 있는 걸까. 나의 풍경 속에는 별로 없다고 느껴진다. 그것을 깨달은 지금, 나는 나의 의지로 내가 존재하는 의미가 있는 장소를 향해 달리고 있다. 
  내 자신을 시험해 보고 싶다. 삶, 분투하며 살아가고 싶다. 수동적인 삶은 필요 없어. 나만의 색을 만들고 싶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며 달리고 있다 보니 점점 꿈이 보이고 있다.

  요전에『뮤직스테이션』에 혼자 나가보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음”하고 신음했다. 괜찮을까 하는.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하게 해 주세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해보자 라고 생각했다.
  부를 노래는 킨키의 곡이 아니다. 내가 작사 작곡한 작품. 당일은 긴장의 극치였다. 게다가 같은 공연할 게스트가 CHAGE&ASKA 씨, Mr. Chilidren 씨와 많은 분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아티스트 분들 뿐이었다. 그런 분들에게 내 곡을 들려 드리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웠지만 그 일면으로는 불안이 팽배했다. 내 안에서 만들어 낸 멜로디와 가사, 밴드사운드는 어떤 식으로 울려 퍼질까.
 
   리허설이 끝났을 때 ASKA 씨가 말을 걸어왔다. “노래, 제대로 만들고 있구나.” 스가시카오 씨도 “기타, 멋지네요.”라고 말해 주었다. 정말로 기뻤다.
 
그리고 본방도 즐거웠다. “록커”기분으로 와일드한 헤어스타일도 좋은 모양새를 갖추었을라나. 이러고.
 
내 안에서 이 날의 일은 꽤 커다란 싸움이었다. 하지만 굉장히 재밌고 의미 있는 싸움이었다.

  음악이 좋다. 좀 더, 좀 더 노래를 만들고 싶어, 연주하고 싶어, 라고 생각해. 내 속에서 끓어오르는 음을 표현해 내는 일은 지금의 나에게 있어 커다란 꿈 중의 하나. 그것이 일로서도 훌륭하게 이어져 간다면 더욱더 좋다고 생각한다.
 
계속 싸워간다면 당연히 상처도 입고 아픈 일도 생긴다. 금방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상관없다.

  얼마 전에, 어떤 스포츠 선수가 이런 말을 했다. 주위에서 뭐라고 한들 나는 일부러 곤란한 길을 고른다. 분명 괴롭겠지만 미래에 그것은 반드시 내 자신을 위한 일이 되리란 것을 믿기 때문에. 라고. 나도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언젠가 플러스의 의미를 지닌 형태가 되리라고 믿는다.

  지금부터 앞으로 주위로부터 이해받지 못하는 일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들 각자는 감각이나 가치관이 다 다르다. 좋고 싫음도 제각각. 좋고 나쁘고도 제각각이다. 지금의 나는 누군가에겐 옳을지라도 누군가에게는 옳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내가 내 자신을 믿을 수 있다면 OK다.

  지금은 마음의 저 밑바닥으로부터 솔직히 그렇게 생각해. 그렇게 생각하며 살고 있다. 최고다. 지금도 최고의 나야. 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사나이다.

  나를 위해 살아간다. 분명 거기서 부터가 “시작”이다.



♨ 뻔뻔한 번역후기

'아이돌'이라는 타이틀은 쯔요시에게 많은 것들을 주었겠지만, 오로지 좋은 것만 준 것은 아니었다. 만들어진 이미지, 누군가가 원하는 이미지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그에겐 얼마나 큰 짐이었을까.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그가 그 자신이 누구인지 제대로 인식하기 전에 이미 시작된 일이라면 더더욱. 어쩌면 '도모토 쯔요시'라는 사람에게 '아이돌'이라는 타이틀은 그 누구에게 보다도 훨씬 어울리지 않는 불편한 '옷'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안에서 많은 싸움이 있었고, 오해와 상처도 많았다. 하지만 쯔요시는 '좌절' 대신 '희망'을 택했다. 쉽게 포기하지도 않았다. 그가 그런 힘을 얻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음악'이었다. 방송에서 조차 '슬럼프'를 내비쳤던 그 였지만. 어느 순간, 자신만의 색을 가진 음악을 만들고, 부르고, 또 그러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아티스트'가 되어 나타났다. 그런데 그런 과정이 분명 그에게도 쉽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그의 글에서, 문장에서, 절실하게 느껴진다.

어릴 때는, 길을 헤매는 것이 당연하다. 무엇이 옳은지도 모르고, 겁을 내고, 도망치고... 그런 당연한 과정을, 그 또한 겪어왔다. 엔터테이너로서 우리를 울고 웃기는 그이기도 하지만, 인간 도모토 쯔요시는, 손을 내밀어 주고 보듬어주고 그렇게 위로를 해준다.  나도, 그렇게 힘들었다고.

++
男前(おとこまえ)라는 단어가 원래는 남자다운 용모, 미남, 멋쟁이 남자 등등. 이라는 의미 이지만, '사나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원문&어휘정리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Posted by 천화